많은 인터뷰어들이 물었습니다. 제가 배운 것과 제 노래 사이의 관련을. 저는 항상 없다고 답했습니다. 속으로는 살짝, 코웃음도 쳤습니다. 윤상 씨에게 요업공예와 전자음악의 연관성에 대해 묻지는 않으면서 왜 제게는 그런 질문을 하는 걸까요.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번복할게요.
진지한 이론 같은 것은 거의 기억나지 않습니다. '표본이 모집단을 대표해야 한다'는 강박, 그것만이 유일하게 남았습니다. 노래는 결국 삶에 대한 것입니다. 심지어 공룡을 노래할 때 ― 예를 들어, 전유동의 〈디플로도쿠스〉 ― 조차. 하지만 많은 작자와 청자들은 노래가 될만한 삶이나 '꺼리'가 따로 있다고 여깁니다. 그 결과 '노래-일반'이 '삶-일반'을 담지 못하는 편향이 발생합니다.
Dean이 말했습니다. "문제야 문제 온 세상 속에 똑같은 사랑노래가". 저도 그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Dean과 다르게 저는 음지에서, 이러한 편향을 교정하는데 골몰하고 있습니다. 이 음반은 그런 시도의 결과물입니다. 사실 인디라는 건 어떻게 보면, 편향에 저항하는 ―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이들의 느슨한 모임일지 모릅니다.
처음엔 죽음을 향해갔습니다. 천국으로의 이사를 준비하는 내용의 「작은 이모」라는 곡이 있었고, 투신을 준비하는 내용의 「검은 강」이라는 곡이 있었습니다. 곡을 추리는 과정에서 몇몇이 제외 되었고, 죽음과는 한 발짝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많은 죽음들이 등장합니다. 자연스러운 방향입니다. 아시다시피 죽음이란, 매주 연기 되는 소풍처럼, 우리와 가까이 있습니다.
죽음과 죽음 사이는 조개 껍질처럼 하찮고, 가볍고, 쓸모 없는, 하지만 조금은 빛나는 것들로 메웠습니다. 꼬마의 곤충채집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대단한 것은 잡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죠. 작은 잠자리채 하나로 작은 이야기를 몇 개를 잡았습니다. 노래보다는 구술 채록과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말처럼 사라지는 말, 빛처럼 사라지는 빛을 줍고 싶었습니다. 그리 우중충 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김일성이 죽던 해》의 라이너 노트 ― 프로듀서는 이 글을 '남색 트라제'라고 부르더군요 ― 에선, 10년 전과 같고 다른 것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2년 전과 저는 어떻게 같고 다를까요. 확실한 것 하나는, 새 노랠 담을 부대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단편선 씨와 그를 믿고 모인 수많은 음악가들이 준비해준 것입니다. 이제는 유행이 한참 지났으니 써도 되겠죠. "저는 그저 숟가락만 얹었을 뿐입니다."
남색 트라제의 마지막은 사장님에 대한 감사 인사로 끝납니다.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해볼까 합니다. 인규, 가을, 아롱, 영조, 민우 같은 친구들. 별 볼일 없는 제게 관심 가져주는 친구들입니다. 물론 아롱이는 사뮈 씨랑만 사진을 찍지만요. 새 음반을 내고 전처럼 활동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정서적 요양이 조금은 필요할 것도 같아요. 그래도, 상처만 아물고 나면 아무 일도 없는 듯이 돌아올게요. 믿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