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백오십일번 버스를 탔다. 길이 생각보다 많이 막혔다. 예정보다 삼십 분 늦게 도착했다. 다들 ―먼저 도착한 인집 씨와 단편선 씨, 그리고 천학주 실장님― 드럼 세팅에 골몰하고 있었다. 기타와 탬버린 따위를 소파 옆에 내려 놓고 음료 주문을 받았다.

오늘은 〈수몰〉, 〈거북이〉, 〈싶어요〉의 드럼과 베이스를 녹음할 계획이었다. 인집 씨가 먼저 드럼을 연주하고 거기에 맞춰 수민 씨가 베이스를 치는 식이었다. 이번 앨범 중 여섯 곡에 드럼과 베이스가 들어갈 예정이었다. 작업의 볼륨이 많이 커졌다. 일집에서 드럼과 베이스를 직접 연주한 곡은 각각 두 곡 ―〈대설주의보〉, 〈사기꾼〉 그리고 〈김일성이 죽던 해〉와 〈나무〉― 뿐이었다. 수민 씨는 다섯시에 오기로 했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일집을 준비할 때의 목표는 발매 그 자체였다. 앨범이란 것을 내보자. 이번에는 그것보단 한 걸음 나아가고 싶었다. 일에서 이로, 단순히 카운트를 올리는 것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더 많은 예산을 책정했다. 더 좋은 녹음실을 잡았고, 더 많은 음악가들을 모았다. 음악이 더 좋은지는 ― 단편선 씨는 그렇다고 말했지만 ― 잘 모르겠다.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거북이〉, 〈싶어요〉, 〈수몰〉 순으로 드럼을 받았다. 큰 이슈는 없었다. 실수로 메트로놈을 껐는데도 칼박에 연주를 했고, 탬버린 트랙에 드럼이 섞여 있었는데도 흔들리지 않았다. 〈수몰〉을 녹음하기 전 드럼 톤을 바꿨다. 학주 씨는 전자 드럼 같은 소리가 나면 좋겠다 말했다. 드럼 위에 이런 저런 것들을 달았다. 머쉬룸 스튜디오에는 신기한 것들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수민 씨가 도착했다. 음료를 다 마신 학주 씨 것 까지 커피 두 잔을 더 사왔다. 학주 씨는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는 맛이 없다며 오늘의 커피를 주문했다.

소라 씨가 왔다. 소라 씨는 스마일즈, 플레이 걸로 활동했고 최근 Print Print Shop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재개한 가수이자 디자이너, 사진작가다. 황푸하 씨의 싱글 〈우후〉 및 EP 《우리집》, 나의 싱글 〈중학생〉의 커버를 만든 바 있으며 이집의 커버 및 프로필 사진, 각종 디자인을 맡기로 했다. 소라 씨는 내게 이런 저런 질문을 했다. 키가 몇이냐, 옷이 짧지는 않냐 등. 함께 온 친구를 소개했다. 프로필 촬영 때 스타일링을 맡아줄 친구라고 했다. 커피를 사러갔다. 늦잠이 걱정 된 소라씨는 디카페인 아이스 아메리카노, 유독 땀을 많이 흘리던 친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베이스 녹음을 시작했다. 한 곡을 마치고 피자를 먹었다. 원래는 드럼 녹음과 베이스 녹음 사이에 피자를 먹으려고 했다. 드럼 녹음이 끝났는데도 피자가 오지 않았다. 확인했더니 주문이 누락되어 있었다. "안 시킨 것 아니야?"라는 누군가의 말에 단편선 씨는 "결제까지 했어"라고 말하며 주문 내역 확인을 거부했지만 모두의 원성에 재차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럴 수도 있다고 누군가 위로 했지만 단편선 씨는 "내가 안 괜찮아"라고 말했다. 나는 그 기분을 잘 안다.

수민 씨가 집까지 데려다 줬다. 수민씨는 본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세션비를 받을 거라는 소식에 기뻐했다. 수민씨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목동에 들려 단편선 씨를 내려줬다. 집에 도착하니 열한시가 조금 안 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