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여러가지로 좋은 일이 많았다. 사회는 병들었지만 개인적으론 건강했다. 심하게 우울하지 않았고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 무릎은 여전히 안 좋았지만 더 나빠지진 않았다. 상을 탔고, 돈을 기대보다 ―거의 기대하지 않아서 언제나 승리한다― 많이 벌었다. 시옷과 바람도 만났다. 둘은 내가 먼저 교제를 요청한 몇 안 되는 사람이다.

사케가 먹고 싶었다. 오또상이 되긴 싫어 다른 것을 집었다. 함께 먹을 어묵은 며칠 전 미리 주문해 놓았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술과 어묵을 데웠다. TV를 켰다. 시상식은 아직이었다. 채널을 돌리며 술과 어묵을 먹었다. 맛이 좋지 않았다. 기분도 좋지 않았다. 안 깐 술은 환불해야겠다는 생각에 영수증을 찾았다. 울고 싶어졌다.

추운 날에는 사케를 먹곤 했다. 흑석동 성당 가는 길 초입에 있는 '5092' ―오공구이라 읽었다―라는 가게에서. 커다란 생선 구이와 함께.* 어떨 땐 잔으로 어떨 땐 도쿠리로. 거의 항상 따뜻하게. 내가 만든 술자리는 거기서 시작하거나 끝나곤 했다. 가게는 오래전에 없어졌다. 그때 친구들과는 좀처럼 연락하지 않는다. 문득 궁금해졌지만, 그래도 연락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것을 메로구이라 불렀지만, 진짜 메로는 아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