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소득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어떤 책으로 처음 시작하는 게 좋을까. 알라딘을 뒤지고 있다. 윤영배 씨가 한국대중음악시상식에서 '기본소득'에 대해 이야기 한지 약 7년이 지났다. 늦어도 한참 늦은 생각이다.
올해는 이런 저런 지원금을 많이 받았다. 나라 것, 시 것, 국세청 것, 예술인복지재단 것, 서울문화재단 것. 그 외 공연인듯 공공근로인듯 알 수 없는 모양새로 주어지는 감추어진 것.
정말로 필요한 곳에 돈이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내가 받지 못해도 조금만 아쉽게. 하지만 선별은 언제나 나이브하게* 이루어지고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돈은 의미 없게 흩뿌려진다.**
대학원 선·후배들이 주는 일들을 종종 한다. 녹취록을 작성하는 일이다. 요 몇 년 사이에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시도들이 계속해서 있어왔다.
'맞춤의 늪'에 빠진 것 같다. 예술인을 위한 맞춤, 특수고용노동자를 위한 맞춤**. 모든 직업, 모든 계층을 위한 맞춤이 등장할 기세다. 하지만 맞춤 사이에는 언제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맞춤엔 끝이 없다.
낭비를 줄여야 한다. 공정을 줄이고 통합하고 없애야 한다. 다른 이름표를 달고 여기저기서 행해지는 똑같은 일을 묶어야 한다. 기존의 많은 복지들은 기본 소득에 통합될 수 있을 것이다.
무상급식이 논란이 될 떄 어떤 사람들은 이건희 씨의 손자를 들먹이곤 했다. 이건희 씨는 손자 밥 값보다 훨씬 더 많은 세금을 낼텐데, 그의 손자가 밥 좀 먹는게 왜 문제인지 모르겠다.
재원은 세대갈등이 아니라 계급갈등을 통해 마련되어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 부양하는 것이 아니라 가진 사람들이 부양해야 한다. 세대론은 대개 허구다. 사상과 습속은 주머니의 무게로 갈린다.
*「청춘마이크」, 「면접」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