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공작소에 가는 일은 항상 기쁘다. 그곳에 가면 내 이름이 쓰인 물병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라벨을 대신한 하얀 스티커는 흔한 페트병 생수를 준비된 선물로 바꾸어 놓는다. 물은 물이지만, 물이 물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친절이나 환대, 존중이나 성의, 신경씀 ― 혹은 어떤 감정노동 ― 이 굳어진 모양이다.* 감동한 나는 오늘 좀 더 잘해봐야겠다고, 지키지 못할 결심을 한다.
내가 랏도를 싫어했던 ― 과거형 ― 일은 나와 랏도 둘 다 아는 사람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런 저런 일로 랏도가 미워지고 있을 무렵, 랏도가 기획한 공연에 스탭 및 출연자로 섭외되었다. 대기 중 만난 랏도에게 물이 어딨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건 까페에 물어보세요"라고 ― 왜 그걸 나한테 묻느냐는 투로 ― 대답했다. 이때의 '물 없음'은 무존중, 무성의, 무신경의 표현이다. 그날 어딘가 숨어있었던 '차가운 김밥'과 마찬가지로.
물은 효과 좋은 검출지다. 신경 쓰는 기획자가 물을 깜빡할 경우는 있어도, 무신경한 기획자가 물을 갖다 놓는 경우는 없다. '신경'이 빠진 공연은 허우적대기 마련이다. 그런 공연에서 가수는 시간을 때우는 사람으로, 노래는 돈 버는 일로 전락한다. 그 때의 기분은 꽤나 더럽다. 못하면 욕 먹는 건 어차피 나니까 태업은 하지 않는다. 대신 '날 불러준 기획자가 체면치레는 할 수 있게 열심히 해야겠다' '좋은 기획이라는 말을 듣게 해야 겠다' 하는 생각을 그만둘 뿐이다.
*섬길만한 가치가 순도 높게 표현 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물은 십자가나 불상보다 훨씬 낫다.
**랏도는 『내역서』(1)에 나와 단편선의 다툼이 실리길 바란 적 있다. 그런 재미가 있어야 입소문이 난다며. 그래서 씬 활성화를 위해 랏도와의 일을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