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이 없다면 11시쯤 일어난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카톡 확인. 요즘처럼 노래를 만드는 시기에는 프로듀서와 가장 많은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의 메시지는 대개 "용성, 일어나면"이라는 조건절로 시작한다. 자리끼를 마시고 요청을 살핀다. 주로 "어제 녹음한 것을 정리해서 연주자와 엔지니어에게 보내 줘" 같은 것들이다. 금방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처리해서 보내 준다. 시간이 걸리는 것 ― 혹은 당장 하기 싫은 것 ― 은 마음속 스케줄러의 빈 시간에 적당히 입력해둔다.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고, 계획해둔 과업을 수행한다. 공연을 앞두고 있다면 우선순위는 단연 노래 연습이다. 《보컬 연습을 위한 스케일》(음원 사이트에 있다)을 틀어두고 입과 목을 푼다.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부른다. 지겨워질 때쯤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것을 켠다. 놓쳐도 상관없는 그런 것들을 틀어 놓고 다시 노래를 한다. 한 곡당 다섯 번씩 부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것을 다 마치면, 어느새 저녁이다.

요 며칠은 단편선 씨를 자주 만났다. 주로 미디 작업을 위해서였다. 단편선 씨의 회사나 '솔루션' - 김일성이 죽던 해를 녹음했던 '사운드 솔루션' 녹음실의 약칭 -에 노트븍과 마스터키보드를 들고 간다. 이런저런 세팅을 마친 뒤 단편선 씨에게 자리를 넘긴다. 그는 이런저런 연주를 해보며 나의 의사를 묻고, 나는 생각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말을 해준다.

바쁘지 않은 날에는 집 근처 체육관Gym에 가서 자전거를 탄다. 망가진 왼쪽 다리에 근육을 붙이는 것이 목표다. 수월하지는 않다. '7'은 가벼워 다리가 헛돌고 '8'은 무릎이 아프다. 옆 사람의 자전거를 힐끔 본다. 덩치가 부끄러워 '10'까지 올린다. IPTV에서 제공하는 무료 영화를 본다. 놓쳐도 상관없는 그런 것들이다. 40분에서 1시간 정도 자전거를 타고, 그날의 기록을 찍는다. 집에 가는 무릎이 뻐근하다. '10'으로 올린 것을 후회한다.

집으로 돌아와선 생계를 유지·보수하는 일들을 가볍게 한다. 이번 추석에 샀는데 벌써 발등에 구멍이 나버린 운동화를 수선 맡긴다. 얼마 전부터 안에서 쇳소리가 나는 스피커를 수리 맡긴다. 읽지 않는 책을 '알라딘'에 올린다. 이제는 그만둔 취미 용품들을 '중고나라'에 올린다. 밀린 작업기를 쓴다. 홈페이지에 지난 공연 포스터를 올린다. 다음 날 있을 합주를 위해 악보를 그린다. 그런 사소한 일들을 한다.

며칠 전엔 건강검진을 받았다. 실적과 관련이 있는지 - 선의를 의심하곤 하는 나쁜 버릇이 남아 있다 - 검진을 권유하는 전화가 여러 번 왔다. 낮 시간이 비어있는데 괜찮겠냐는 물음에 "프리랜서라서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프리랜서', 세상 유용한 단어다. 그다지 거짓은 아니면서,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적당한 이미지를 상대방에게 제공한다. "음악을 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언제나 따라오는 "무슨 음악을 하냐?"라는 질문도 완벽하게 차단하면서.

그렇게 노래도 만들고, 피도 뽑고, 택배도 보내고, 중간중간 밥을 먹고,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더욱 사소한 일들을 하면 대충 하루가 다 간다. 딱히 뭘 "했다" 싶은 건 잘 없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꽤 많은 것들을 한다. 여유 있게 책을 읽을 시간이나, 게임을 할 시간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그러다 새벽 4시쯤 다시 눕는다. '상반기 EPL 베스트 11', '챔스 16강 대진 뜯어보기' 같은 방송을 들으며 잠을 청한다. 4시 반쯤 잠이 들고, 다시 11시쯤 깬다. 그리고 비슷한 일을 반복한다.

*그나저나 체육관에선 왜 항상 댄스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일까? 조동익이 나오면 좋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