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선은 한국의 음악가이다. 198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4년 처음으로 클럽에서 공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6년부터는 회기동 단편선이라는 이름의 1인 포크 프로젝트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옛 가요와 영미 언더그라운드 포크, 인디록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 외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음악가 외에도 활동가, 자유기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특히 2010년부터는 자립음악생산조합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https://danpyunsun.tumblr.com/profile)

단편선씨는 제 앨범의 프로듀서입니다. 어느 떄부터인가 프로듀서란 말이 자주 쓰이게 됐습니다. 쓰임은 늘었지만 프로듀서가 무엇인지는 예전보다 불명확해진 느낌입니다. 축구를 세가지로 구분하는 우스갯소리처럼 프로듀서도 몇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면, 단편선씨는 단언컨대 '프로듀서1'에 속할 것입니다. 그는 돈 끌어 오는 일-흔히 말하는 제작-부터 노래와 노래 사이 숨소리의 크기까지, 모든 것에 관여했습니다. 이 앨범은 제 이름을 달고 나와, 저의 음반으로 취급되겠지만, 저는 이것이 동시에, 단편선씨의 앨범으로 여겨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없었으면 이 앨범은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단편선씨한테 존댓말을 씁니다. "단편선씨"하고 부르고, "-요"나 "-다"로 말을 끝맺습니다. 사람들이 종종 저와 단편선씨의 관계를 궁금해합니다. (제가 목격한 바론) 그의 음악-동료들 중 그에게 존대를 사용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인 듯 합니다. 모두들 그를 "단편선"이라고 부르고 반말을 합니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서로 존대를 하는 저희 사이가 꽤나 희한했나 봅니다.

단편선씨와는 2012년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자립음악생산조합에서는 조합원을 위한 소액대출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혼자서도 잘해요》의 프레싱 비용을 융통하고자 했습니다. 조합의 운영위원이던 단편선씨를 만나 두리반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유채림 선생님이 저에게 활동명을 물었는데 부끄러워서 대답을 못했습니다. 두 번째로 만난건 2013년 겨울이었습니다. 자립본부에서 열린 '전국인디자랑'에서 노래를 했습니다. 단편선씨는 사정이 있어서 못온 경하씨를 대신해 믹서 앞에 섰습니다. 뒷풀이로 을지로골뱅이를 먹고 술을 마셨습니다. 같이 지하철을 타고 갔습니다. 그리고 2018년 2월에, 프로듀싱을 부탁하기 위해 세번째로 만났습니다.

단편선이란 사람이 있다는 것은 2010년 즈음 알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갓 군인이 된 때 였습니다. 전남 장성에서 병과교육을 받고 있었습니다. 주말에 외출을 나와 근처에 있던 친형의 집에 찾아갔습니다. 모두 잠든 밤 거실에 있는 티비로 웹서핑을 했습니다. 셋톱박스에 기본으로 저장되어 있던 사이트 중에 지금은 사라진 '보다'라는 웹진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단편선씨가 쓴 글을 밨습니다. 그떄는 그를 평론가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 그가 두리반에서 노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후로 쭉 단편선을 존경해왔습니다. 활동가로, 음악가로.

나한테 없는 것들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내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프로듀싱을 부탁했습니다. 단편선씨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도 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혼자 음악을 해왔기 때문에 인맥이라 할만한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안면도 있고 번호도 있고, 메일 주소도 있는 유일한 음악가가 단편선씨였습니다. 최선이면서, 유일한 선택지였습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자는 그의 답장을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가 거절한다면 아무 대책이 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단편선씨께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