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녕을 처음 읽은 때가 기억나지 않는다. 《창작과비평》에서 윤대녕을 처음 읽었다고 생각해왔다. 시기를 특정하기 위해 읽었을 법 직한 시기의 《창작과비평》을 뒤져 보았다. 윤대녕의 것이 없었다. 언제부터 읽었을까. 대학 도서관에서 『은어낚시통신』 같은 것들을 빌렸던 기억이 있다. 농활 가는 버스에서 읽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천 가는 버스에서 읽었던 것 같기도 하다. 책을 비추는 노란 햇살이 기억난다. 중학교 2학년 때 국어교사, 나의 담임교사는 우리에게 자습을 지시한 후 컴퓨터 책상에 앉아 『사슴벌레여자』를 읽었다. 그의 남편은 이웃 중학교 체육 교사였는데 예비역 중위인 저보다 계급이 낮은 나의 아비를 무시했더랬다.

윤대녕 소설은 뻔하다. 마광수 수필 같다. 책을 바꿔가며 했던 말을 계속한다. 처음 읽는 책도 읽은 책 같다. 그런 면에선 홍상수 영화랑도 비슷하다. 「윤대녕 소설을 쓰기로 했다」와 같은 작품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주인공은 남자다. 문필업에 종사한다. 기자이거나 작가이다. 모종의 이유로 잠시 기자 일을 하게 된 작가일 수도 있다. 그런 그가 취재-여행을 떠난다. 떠나는 길에 혹은 떠난 곳에서 여자를 만난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대단치 않은 일들이 연속된다. 나는 뻔한 윤대녕이 좋았다. '누구'같다고 언급되곤 하는 '누구'가 되기는 쉽지 않다. 윤대녕은 스스로 장르가 되었다.

2009년까지는 윤대녕을 좋아했다. 버리는 티셔츠에 글씨를 쓰며 논 적이 있다. 페스티벌 포스터처럼, 일자별 라인업을 줄줄이 적었다. 하루키도 있었고, 윤대녕도 있었다. 또 누가 있었더라. 아마도 '어떤 날'이 있지 않았을까. 그해 나는 '소녀여'를 카피하고 있었으니까. 전역 후 어느 시기부터 윤대녕을 읽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읽은 것은 아마 『장미창』이다. 그때, 62년생 윤대녕이 49년생 하루키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윤대녕은 하루키보다 더 과거를 살아왔고, 그게 너무 멀게 느껴졌다. 윤대녕의 소설엔 '에어맥스'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단순히, 소설을 예전보다 읽지 않게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언제부턴가 책 읽기가 일 같아졌다.

대설주의보는 세 번쯤 읽었다. 집에서 한 번, 군에서 한 번. 다시 집에서 한 번. 곡은 두 번째 와 세 번째 독서 사이에 썼다. 포병학교를 수료할 때쯤 원인 불명의 폐렴에 걸렸고. 중환자실에서 몇 주를 보냈다. 온종일 자서 잠이 더 오지 않았다. 해열제를 주사하고 다시 열이 오르기까지의 시간에 책을 읽었다. 김훈의 『공무도하』, 윤대녕의 『대설주의보』, 공지영의 『착한여자』를 같은 것들. 착한여자는 중환자실에 비치된 것이었는데 1권 밖에 없었다. 퇴원 후에 2권을 구해 읽었다. 당시는 남아공 월드컵 기간이었다. 간호장교는 새벽에 잠을 깨워 축구를 보게 했다. 어디선가 구워 온 매운 닭봉 몇 개를 주며.

곡은 아마도, 2013년 이후에 썼다. 이상하게 기억이 잘 없다. 지금의 데모는 2014년에 완성했다. 이야기 전체는 소설에서 따왔다. 후렴의 팥빙수 부분만 내 이야기다. 아마도 소설에는 팥빙수가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2007년 여름이었다. 방학이라 이천에 머물고 있었다. 후배를 만나러 서울에 올라왔다. 성균관대 근처에서 만나 밥을 먹었다. 후식으로 빠리바게뜨 같은 곳에서 팥빙수를 먹었다. 그게 너무 맛이 없었다. 얼음이 너무 크고 거칠고 단단했다. 왜 대학로였을까? 우리의 학교는 한강 아래에 있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