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부대찌개를 먹고 한 시간쯤 잤다. 자고 일어나니 명치부터 목까지 타들어 가는 듯 아팠다. 역류성식도염인듯 했다. 얼마 전 가슴팍이 아파 병원에 갔었는데 역류성식도염일 수도 있다며 약을 지어줬다. 오진일 거라 생각하고 약은 대충 먹었다. 전날 뭘 대단하게 먹은 기억이 없었다. 밥 먹고 눕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엔 인과관계가 터무니없이 명확했다. '이게 그거구나'하고 알 수밖에 없었다. 처음 쥐가 났던 새벽 밤 때처럼. 다행히 남은 약을 입에 넣었다. 불신이 득이 됐달까.
토요일엔 결혼식에 갔다. 가는 길에 집 근처 내과를 들렀다. 소아과를 겸하는 곳이라 그런지 대기인원이 많았다. 식에 늦을 것 같아서 그대로 뒤돌아 나왔다. 통증은 좀 줄었지만 다음 날 노래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목 상태가 좋지 않아 〈김일성이 죽던 해〉 녹음을 미룬 적이 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될까 걱정이 됐다. 단편선씨에게 결정을 넘겼다. 녹음은 수요일로 미뤄졌다. 부페는 많이 먹지 못했다. 결혼 축하해 주형아.
화곡역 6번 출구 앞에서 단편선씨를 만났다. 2시. 바로 옆에 있는 할리스 커피에 갔다. 유자차를 먹었다. 위산에 상처 입은 목에는 딱히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먹었다. 유자차는 목에 좋은 음식이니까. 2층에 앉아 회의를 했다. 한산하고 좋았다. 발매일을 잡고, 역산해서 나머지 일정들을 잡았다. 공정률을 계산하고 월별 목표치를 정했다. 텀블벅과 단독공연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택시 타고 집으로 와서 〈딴생각〉 오케스트레이션을 했다. 신디사이저로 쳐놓았던 것들을 가상악기로 다시 연주했다. 프로툴에 문제가 있어 큐베이스로 작업을 했다. 안 쓰던 프로그램으로 안 하던 작업을 하니 진도가 더뎠다. 단편선씨의 목소리가 점점 답답해졌다. 밤은 깊어 가는데 기상 시간은 정해져 있다. 단편선씨가 방금 그 '쏠'을 하나 올려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뭐가 '쏠'인지 알 수 없었다.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데 능력이 부족하다. 슬픈 일이다. 조만간 라이프가 하나 더 닳지도 모르겠다.
바이올린 없이, 베이스, 첼로, 비올라, 팀파니 이렇게 네 악기를 넣었다. 충분히 안 좋게 들려서, 좋았다. 단편선씨는 고민이 많은 듯했다. 나는 귀가 없어서, 어떻게 좋은 화성이고 나쁜 화성인지를 알지 못한다. 나한텐 틀린 게 없고, 단편선씨한테는 틀린 게 있다. 실생활과는 다르게 이럴 때는 고민이 없다. 일단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음번에 만나 세세한 걸 고치기로 했다. 마을버스를 타는 데까지 배웅했다. 8분 후에 온다던 버스가 벌써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