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와 음반소개서를 썼다. 자기소개는 단편선씨의 양식을 준수했다.
[자기소개서]
천용성은 한국의 음악가이다. 1987년 안양에서 태어났고 경기도 이천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대학가요제에 나가고 싶어 곡을 쓰기 시작했다. 2012년 ‘경험담’이라는 1인 프로젝트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2013년까지 총 8곡을 발표하였다. 학업으로 중단하였던 활동을 최근 재개하였다. 현재 정규 1집 《김일성이 죽던 해》를 준비 중이다. 영미의 록, 메탈, 얼터너티브, 90년대 한국 가요와 2000년대 한국 인디음악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 외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음반소개서]
《김일성이 죽던 해》는 지난 10년간의 기록입니다. 〈난 이해할 수 없었네〉는 2009년에서 2010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자취방에서 만들기 시작해서 2010년 가을에 완성했습니다. 〈사기꾼〉은 2016년 어느 날 흥얼거려놓은 녹음물을 들으며 2017년에 완성했습니다. 2018년에 프로듀서 단편선씨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올해 음반을 내게 됐습니다.
저는 많이 변했습니다. 좋아한 사람보다 미안한 사람이 많아졌고 윤대녕은 예전만치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변해가는 모습들은 노랫말과 소리 아래 공동지구Hollow Earth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내가 제일이라고 자신하던 때도, 이제는 곡을 쓰지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하던 때도. 나의 이야기도, 나의 이야기 같은 남의 이야기도. 이 음반을 굳이 기록이라 칭하는 까닭입니다.
변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태도와 질문들입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학교를 나온 2016년에도, 직장을 관둔 2013년에도, 전역을 앞둔 2012년에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마음은 두말할 것 없습니다. 제가 아직 대학을 다니던 때, 지나가는 저를 붙잡고 차 한 잔 사달라던 보살님과 체념에 대해 말하던 때와 다르지 않습니다. 추운 겨울 롯데리아 2층에서 한참 동안을.
모양이 제각각인 노래가 한 곳에 모여 있습니다. 경영학적 사유로 '순도 1000% 인디 포크'를 표방하고 있지만, 노래의 절반은 명쾌한 포크가 아니며, 노래의 절반은 명백히 포크가 아닙니다. 단편선씨와 저는 백화점식 음반이라고 자평했습니다. 비평적 경멸을 표현하는 말이지만 저는 좋습니다. 백화점은 좋은 곳입니다.
실상은 잡화점 정도에 그칠 것입니다. 그래도 만족합니다. 간판과 조명과 진열이 같다면 물건은 제각각이라도 괜찮습니다. 폐업한 점포를 잠시 빌려 현수막 아래 속옷을 파는 가게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작곡에도 기타에도 노래에도 선수가 될 수 없습니다. 제가 팔 수 있는 것은 저라는 매체에 묻어 있는 얼룩 같은 자의식뿐입니다. 무슨무슨주의자, 무슨무슨어(-er)가 되기 위해 그것을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기계적인 통일성을 버린 이 음반은 그래서 더욱 '앨범'입니다.
어느 겨울이었습니다. 사장님의 남색 트라제 XG 안에서 장필순씨의 데모를 들었습니다. 조동익씨가 쓴 〈무중력〉이 흘러나왔습니다. 나는 음악을 관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울한 표정을 짓는 까닭을 물어본 사장님은 대략 이런 말을 해줬습니다. "네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퉁명스러운 사장님이지만 그때는 천사 같았습니다. 사장님 말씀이 맞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