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을 2개월 앞둔 2012년 4월쯤 쓰기 시작해서 전역 후, 어느 시기에 완성한 노래이다. 다른 곡들과 마찬가지로 언제 완성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데모는 2014년에 녹음했다.

전역 전에는 첫 소절, "먼 곳에서 보낸"부터 "하나씩 지워갔던 하루"까지의 가사만 있었다. 결산을 마치고, 위병소에 들러 택배를 찾아, 연병장을 가로질러 숙소로 가던 길이었다. 복잡하지만 뻔한 심경이었다. 여행 가는 날 아침의 마음으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첫 소절을 완성하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었다. 역접으로 끝나는 첫 문장을 살리려면 뒤에는 '이러이러한 일로 군대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라는 얘기가 나와야 했다. 그치만 군대에 뭐 좋은 일이 있을까. 이 말 저 말 붙여봤지만 모두 별로라 떠오르는 대로 가사를 붙였다.

나머지 가사들은 전역 후에 붙였다. 27살 혹은 28살 때. 20대의 끝을 향해 갈 때라 그런지 왠지 모를 애수가 느껴진다. '황성옛터'와 비슷한 바이브다. 농담으로 흔히 하는 말 "1억 준다 그러면 다시 군대 갈 거야?"에 대한 내 나름의 대답일는지도 모른다. 요즘도 가끔 군대에 다시 가는 꿈을 꾼다.

입대 전부터 바라왔던 전역이 다가오고 있었다. 불안했다. 뭘 어떻게 벌어먹고 살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당장 취업을 하지는 않을 거라고 집에 통보했다. 집에서는 할 거 없으면 군에 눌러앉으라고 했다. 연초부터 부랴부랴 몇 곡을 발매했지만 음악에 별 재능이 없다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다.

군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남들보다 편하게 생활했고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다. 이렇든 저렇든 첫 '직장'이었다. 애착이 없을 수 없다. 나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다. 돈 버는 일의 애달픔도 겪었고, 그렇게 번 돈으로 앨범도 제작했다.

힘들었던 것은 전前 군생활이었다. 베레모 쓰고 학교 다니며 경례 소리로 교정을 채웠다. 스쳐 가는 선배를 놓칠까 항상 불안해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신경을 쓰다 결국은 스스로를 감시하는 파수꾼이 되었다.

군대에 안 갔다 하더라도 별일은 없었을 것이다. 보람도 없고 쓸모도 없는 일들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허튼짓을 하거나, 우물 안에서 허송세월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쉽다, 그 2년 반이.

나는 그저, 탓할 대상을 찾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