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에게 전화가 왔다. 오전 10시. 자고 있는게 괜히 부끄러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영상통화였던 탓도 있다. 11시쯤 다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자지 않은 척, 한 톤 높은 목소리로.

윤재는 삼촌 노래를 연습했다며 피아노를 쳤다. '대설주의보'와 '김일성이 죽던 해'를 각각 1절씩. 왜 끝까지 안 치냐 물으니 "이 정도면 다 친거죠" 라고 했다. 기특하고 재수없었다. 코딩책을 보냈냐고 채근하길래 오늘 보내겠다고 말했다.

사람을 죽이는 꿈을 꿨다. 이름은 모르지만 절친한 사람이었다. 살해 방법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지인들이 내게 그 사람의 안부를 물을 때 마다 뜨끔했다. 나의 행각이 들통날까 꿈에서 내내 마음을 졸였다.

자기 전에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민음사 판)을 읽었다. 제목만 봐도 참으로 읽고 싶어지는 ― '김일성이 죽던 해'와 비슷하군 ― 책이지만 손에 쥐기까지 34년이나 걸렸다. 왜 난 항상 이 책을 거절해왔던 것일까.

별자리 운세를 닮은 책이다. 처음에는 '내 이야기다' 싶을 정도로 빠져 읽지만 어느 순간 정이 떨어진다. 겉치레로 하는 자살에 남을 끌어들여 죽게 만드는 비열함이 특히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