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목을 풀었다. 오늘 연주할 곡을 한 번씩 더 쳐봤다. 자주 쳤던 곡들은 나쁘지 않았다. '상처', '김일성이 죽던 해', '난 이해할 수 없었네' 같은 것들. 최근에 익힌 곡들은 여전히 많이 틀렸다. '나무', '울면서 빌었지' 같은 것들. 이래선 공연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라이브를 할 때마다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지는 않을까. H&M에서 구입한 기묘한 이야기 셔츠를 입었다. 데모고르곤의 벌린 입이 그려져 있는.

6시 40분부터 7시 20분까지 리허설이 잡혀 있었다. 집에서는 5시 반쯤 나왔다. 지하철 타고 가면 50분쯤 걸린다고 했다. 재미공작소에 입고할 CD를 빼먹었다. 다시 집으로 갔다. 오늘 배송 온 전자시계의 설명서도 챙겼다. 설명서 없이도 시간 조정쯤은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어려웠다. 옛날 사람이 된 걸까, 옛날 물건이 된 걸까. 무려 월드타임 기능이 있는 시계다. 모델명은 'AE-1200WH-1BVDF'

영등포구청역에서 지하철을 하나 보냈다. 사람이 꽉차서 탈 수가 없었다. 뒤늦게 빈틈을 발견하고 몸을 살짝 우겨넣어 봤지만 닫히는 문에 밀려 나왔다. 마음이 살짝 조급해졌다. 재미공작소에 조금 늦을 것 같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만원 지하철을 억지로 타보려 한 건 처음이었다. 스스로 좀 놀랐다. 급하면 사람이 변하는 구나. 닫히는 문에 눌린 팔이 아팠다. 폐를 끼친 것 같아 별로 였다.

재미공작소에 도착했다. 미지씨와 사월씨, 그리고 나중에 이름을 알게 되는 피슈씨가 있었다. 먼저 리허설을 마친 미지씨 일행은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준비한 곡을 한번씩 쳐봤다. 역시나 많이 틀렸다. 처음 쳐보는 곡 같았다. 쉽다 생각했던 곡들도 종종 지뢰처럼 문제가 된다. 소위 말하는 '게슈탈트 붕괴'가 일어난단 말이지. 사운드가 직관적이라 좋았다. 작은 공연장은 이렇게, 모니터 스피커 따로 없이 하는 것이 훨씬 좋은 것 같다.

선물 받은 야마하 사일런트 기타를 들고 갔다. 지판 너비는 대강 익숙해졌는데, 통 없는 바디는 아직 조금 불편했다. 어디에 의탁해야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나중에 찍힌 사진 보니까, 아기 기타를 들고 치는 것 같은 모양새던데. 단편선 씨나 율범 씨가 기타를 바꾸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멋이 없다고. 기타 소리는 깔끔하고 좋았다. 뭉치는 곳 없이. 라이브에서는 이쪽이 훨씬 나은 것 같다.

리허설 마치고 대기실에 앉아 연습을 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연습을 해도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오히려 불안을 키운달까. 몇 달전 단오절 공연을 보러왔을 때, 단편선 씨와 소영누나가 이곳을 드나드는 모습을 보았다. 이제는 내가 들어왔다. 감회가 새로웠다. 몇 달 전 그들이 노래 하던 곳에 내가 온 것이. 위상은 전혀 다르지만. 평소에는 사무실로 쓰이는 공간인 듯 했다. 소장판 AKIRA 같은 것도 있고.

식사를 마친 미지씨가 대기실로 찾아왔다. 짧은 인사를 나눴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목소리가 엄청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노래하는 목소리랑 다르구나. 낭송을 듣고 싶은 목소리였다. 미지씨가 나가고, 공연이 시작하기 전까지 연습을 조금 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