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병학교에서는 4인 1실을 썼다. 한 방에 2층 침대 두 개, 책상이 네 개 놓여 있었다. 나랑 태영이가 2층을 썼고 정기랑 정환이가 1층을 썼다. 정환이가 내 아래였는지 정기가 내 아래였는지 잘 기억 나지 않는다. 같은 방을 썼던 사람 중 정환이만 217로 갔다. 나는 206에 갈 예정이었으나 입원으로 인해 자대배치가 늦어졌고, 그 사이 공석이 생긴 213으로 가게 되었다.

정기는 나를 좋아했다. 이유는 상당히 단순했는데, 내 군번이 빠르고, 내가 나온 대학을 좋은 곳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에겐 없는 것 같은 똑똑함을 내가 갖고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학교에 있을 때는 "용성이는 사표를 외운다"는―사표를 외우는 것 만큼 멍청한 짓이 있을까―이상한 소문을 내고 다니기도 했다. 연대에서 213으로 돌아왔을 때, 나름 힘이 있던 정기는 나를 자기 방에 들였다.

정기는 항상 늦게까지 일을 했다. 나는 '덤'처럼 떨어진 인력이었으니까, 할 일이 별로 없었다. 출근해서는 총기함 열쇠를 목에 걸고 먼 산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칼 같이 퇴근해 일찌감치 불을 끄고 누워 오디오 북을 들었다. 라식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정기는 예전보다 나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내가 그에게 알려줄 게 별로 없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지난 1년 반 동안 나는 매일 문서만 쓰고 커피만 탔으니까.

정기 얘기를 잔뜩 했지만, 가장 친한 것은 동환이였다. 동환이는 나를 "턱"이라고 불렀다. 턱이 나왔다는 이유로. 그 별명을 쓰는 사람은 정기와 동환이 두 명 뿐이었다. 포병학교에서 동환이는 맞은 편 생활관에 있었다. 동환이, 학준이, 동규랑 또 누가 있었더라. 본성이? 동규는 다른 사단이었고 학준이랑 본성이는 각각 217, 206으로 갔다. 동환이랑은 농구를 많이 했다. 나는 농구를 전혀 할 줄 모르지만 동환이 입장에서는 작고 모르는 놈 보다는 크고 모르는 놈이랑 하는 쪽이 더 재미있었을 것이다. 전역을 하고 언젠가 오키나와에 놀러 가자고 약속도 했었다.

동환이는 전역하고 선생님이 되었다. 가장 최근에 연락한 것도 5년이 지났다. 그때는 남해의 교육청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배구도 시작했다고 했고. 정기는 어느새 소령이 되었다. 결혼도 했고, 애도 있고, 골프도 친다. 정기를 보면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난다. 군인이 될 생각은 한번도 한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