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영상 제작과정에서는 제작과 구상, 실행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외주)기획위원이 나를 선택한다. 제작사가 나를 섭외한다. 외주사가 촬영을 한다. 기획위원의 글과 함께 영상이 올라온다. 제작사가 입금을 한다. 문제는 나를 뽑은 사람은 현장에 없고 촬영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 그가 나를 택한 이유, 그의 음악적 애정은 어떤 방식으로도 화면에 반영되지 않는다. 영상은 나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는 수많은 감독들*에 의해 와플처럼 구워진다.

새 시즌을 맞이한 감독이 선수를 영입한다. 선수는 감독의 지지에 크게 부풀어 있다. 하지만 시즌 중반 성적부진으로 감독이 경질 된다. 새 감독은 말한다. "너는 내 플랜에 없어." 마찬가지로 나는, 나를 뽑은 사람이 없는 곳에서 무엇을 보여줘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무엇인가를 보여줘야 한다.

감독이 있다는 점에서, 축구팀은 나은 편이다. 음악-영상 촬영에는 수많은 종류와 계급의 '감독'들이 개입하지만, 엄밀한 의미에 '연출자'는 잘 없다.*** 그들은 리스크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저 찍는다. 연출은 대개 출연자에게 수동적인 방식으로 은연 중에 '아웃소싱' 된다. 권한과 자원, 그에 해당하는 보상은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지만, 그럼에도 출연자가 알아서 무대든 옷이든 얼굴이든 몸짓이든 잘 꾸며야 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면 항상 의아해지는 것이다. 이것은 내 영상이 아닌데. 제작자의 것이고 연출자의 것인데. 왜 현장에는 이미경도 없고, 봉준호도 없는 건지. 나는 짐벌을 들고 있는 사내와 마찬가지로 날품 파는 것 뿐인데. 어째서 모두가 이것을 나의 영상으로 생각하고, 나 조차도 나의 영상으로 생각하는 건지. 어째서 아무도 잘 하고 싶어하지 않고. 어째서 잘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나 하나 뿐인건지.

*그들은 대개 'D'로 끝나는 직함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것에서 언젠가 서동진 씨가 했던 말, "제빵노동자를 파티시에라는 기이한 이름으로 호명하거나 미용사를 헤어스타일리스타라고 부르거나 패스트푸드 배달원을 라이더라고 지칭하는 말장난은 이데올로기라고 부르는 것의 정수를 보여준다"**, 을 떠올린다.
**서동진 씨의 글은 한겨레 신문 칼럼 「병든 말들, 그리고 억류된 말들」에서 인용했다.
*** 적극적인 연출을 했던 것은 배민라이브가 유일했다. 노래야 언제나처럼 못했지만, 그래도 가장 기분 좋은 촬영이었다.
**** 이런 의미에서 카코포니 씨나 뜻돌 씨는 훌륭한 가수인 것 만큼이나 훌륭한 연출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