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신이 살고 있는지 묻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된 사람과 못 된 사람이 있다면, 더 삶 같은 삶과 덜 삶 같은 삶이 있는 것이고. 삶이 끝없이 덜해진다면 결국 나는 살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이런 쪽에서는 꽤나 고대적이다. 모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취향 덕일지도 모른다. 어미는 그런 욕을 즐겨 했다. "인간 같지도 않은 새끼". 그는 걱정이 들었다. 인간이 비인간일 수 있다면, 언젠가 나도 산 송장처럼 그저 살기만 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언젠가 원한을 가득 담은 말을 들었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날로 커졌다. 그런 말을 두 번 더 들었을 때, 확신했다. 잘 못 살고 있다. 나는 이미 충분히 잘못되었다. 하지만 다시 살 길은 보이지 않았다. 10살 때 베드로가 된 부인否認의 유망주는 어디서나 겉도는 회의주의자로 성장했다. 배움은 불안했다. 미안하단 말은 예전보다 잘하게 됐지만 가장 미안했던 사람들은 모두 곁을 떠났다. 그들에겐 정작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기꾼이 될 거라던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그에게 사기꾼은 조조와 같은 인간. 재능은 있지만 덕이 없는 사람. 그는 절반쯤 맞았다. 이젠 짧다 할 수도 없는 내 경험에 따르면, 사기꾼에겐 고민이 없다. 산만하게 뻗은 가지 끝에 걱정이 종종 매달릴지언정. 그들의 체액엔 피 대신 신념과 확신이 흐른다. 좀처럼 하지 않는 의심은 봄비 온 운동장에 소금쟁이 뛰는 물처럼 얕다. 더께 쌓인 피부는 해마다 경화된다. '나'는 충분히 사기꾼이 되지는 못했다.

때로는 사기꾼이었으면 한다. 오늘의 삶이 어려운 것은 어디에도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