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주의보를 녹음 했다. 원래는 한 시부터 〈김일성이 죽던 해〉 건반 녹음을 하고 세 시부터 〈대설주의보〉를 녹음하려 했다. 나는 열두시쯤 녹음실에 도착했다. 드럼 녹음을 하는 날이라 이것 저것 준비할 게 많았다. 지완씨가 늦는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콘솔을 켜고 소리가 들어오는 것을 확인했다. 한 시쯤 도착한 단편선씨와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근황을 나누고 단편선씨의 미발표곡들을 들었다.

지완씨는 2시 40분경에 왔다. 〈대설주의보〉를 먼저 녹음하기로 했다. 준철씨, 영훈씨, 준씨 순서대로 왔다. 舊 악어들 멤버들이다. 준씨는, 준철씨를 보며 "야, 여기 우리 첫 녹음했던 데잖아" 라고 말했다. CD장을 기웃거리던 준씨는 자신의 곡이 실린 백업CD를 꺼내왔다. 준철씨는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아, 그래?" 정도의 반응이었다.

영훈씨 먼저 부스에 들어갔다. 1번 채널에 소리가 들어오지 않았다. 킥 마이크만 GML프리에 연결했다. 스튜더 콘솔을 사용하는 건 처음이라 조금 헤맸다. 단편선씨는 부스에 들어가서 영훈씨랑 드럼 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뮤트링이 없어서 급하게 청테이프를 사왔다. EQ, 컴프 모두 걸지 않고 받았다. 실력이 부족해 소극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단편선씨도 납득하는 눈치였다.

총 9채널을 사용했다. 킥(AKG D112), 스네어 위-아래(Shure SM57), 하이햇(Rode NT5), 탐 세 개(Sennheiser MD421), 좌우 심벌(Rode NT5). 내가 녹음실에 있을 때랑은 다른 세팅이었다. 당시엔 심벌 마이크로 AKG C414를 사용했고 앰비언스도 받았었다. 오버헤드는 그때도 없었다. Cinemix라는 거대한 콘솔이 있을 때였다. 소리가 안 나면 뜯어서 메탄올로 청소하곤 했다.

드럼 녹음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노래가 이상해서 어디를 어떻게 연주하는 게 좋을지 잘 모르겠다, 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만 빼고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전문가들이 그렇다고 하니 '아, 이상하구나'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기분이 살짝 좋았다. 이상하다니! 터질 곳과 터지지 않아야 하는 곳, 당겨야 할 곳과 당기지 않아야 할 곳을 상의해가며 녹음을 받았다. 후주 녹음할 때는 지완씨가 가이드를 쳐줬다. 스네어, 심벌 모두 녹음실에 있는 제품을 사용했다. 아마도 야마하 무슨 커스텀이다.

단편선 씨가 산 파파존스 피자를 먹었다.

베이스 녹음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엄지로 칠지 검지-중지로 칠지 결정하고, 올라갈지 내려갈지를 결정하고, 음을 더 넣을지 말지를 결정했다. 베이스 녹음을 하다 드럼녹음이 잘 못된 것을 발견했다. 베이스를 마저 녹음하고 드럼을 다시 녹음하기로 했다. 베이스 음정이 불안해서 오토튠을 걸었다. SG 같이 생긴 GUILD 베이스를 AMEK 9098 D.I에 연결해서 받았다. 준철씨는 몸이 좋지 않았다.

다시 드럼 녹음. 앞서 녹음할 때 펀치 해둔 곳이 잘 붙지 않았다. 후주를 새로 연주했다.

건반 녹음은 금방 끝났다. 곡 내내 깔리는 EP를 먼저 받고, 브릿지 구간의 오르간을 받았다. P2 D.I로 녹음했다. 라인 입력으로 직접 넣었을 때는 원하는 만큼 레벨이 나오지 않았다. 건반에서 레벨을 올리니까 클리핑이 생겼다.

통기타 녹음을 했다. 데모에서는 전기기타로 연주했던 백킹을 통기타로 대신했다. 녹음 중간에 마이크가 앞으로 한 번 고꾸라졌다. 녹음을 재개했더니 갑자기 소리가 너무 크게 들어왔다. 여러 가지 추측이 있었는데 왜 그랬는지 결국 알 수가 없었다. 단편선씨는 괜찮게 됐다고 했는데, 준씨는 들어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처음부터 수정하다 보니 결국 끝까지 다 새롭게 쳤다.

EP 전주를 새로 녹음하고, 겨울 느낌이 나는 벨 소리를 그 위에 얹었다.

일렉 기타녹음이 가장 오래 걸렸다. 체감으로는 두 시간 이상 한 것 같은데 시간을 재지 않아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세팅부터 조금 문제가 있었다. 준씨의 컴프 겸 D.I에서 프로툴로 바로 입력했는데 중간중간 클리핑이 생겼다. 그래서 AMEK D.I로 옮겼는데 그래도 클리핑이 생겼고, 결국은 앰프마이킹을 하기로 했다. 부스 안에 복스 패스파인더 앰프를 설치하고 U87을 댔다. 준씨는 컨트롤룸에서 연주했다. 톤을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단편선씨와 나는 록 같지 않은 몽글몽글한 소리를 원했다.

두 트랙을 연주했다. 뒤에 깔리는 코드들이 있었고, 중간에 기타 솔로, 후주의 기타 솔로. 후주 기타 솔로를 먼저 연주했다. 어떤 느낌으로 칠지 멤버들이 이야기했다. 조지벤슨, 존프루시안테, 존메이어 등등이 나왔다. 류준씨는 이름을 듣는 대로 비슷한 느낌의 연주를 했다. 유튜브에서만 보던 것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후주 솔로는 조지벤슨. 단편선씨는 퍼즈를 건 고전적인 록 기타 솔로를 원했는데 멤버들이 만류했다. 중간 솔로는 내가 직접 디렉션을 줬다. 솔로 같지 않게. 있는지도 모르게. 나른하게. 대충 치고, 틀리는 느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