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날처럼 스타벅스에 갔다. 내가 마실 디카페인 아메리카노와 단편선씨가 마실 히비스커스티를 샀다. 녹음실로 걸어가는데 저 멀리서 단편선씨가 보였다. 음료가 쏟아질까봐 살짝 빠르게 걸었다. 단편선씨는 전화기에 고개를 박고 좀비처럼 걸어가고 있었다. 그쪽으로 가면 안 되는데. "오른쪽, 오른쪽" 단편선씨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전투에 열중하느라..."

다른 날과 다르게 아침 11시에 모였다. 새벽에 자는 습관이 있어서 항상 잠이 부족했다. 잠이 부족하면 목에 좋지 않을 것 같아 1시간 미뤘다. 그래도 많이 자지는 못했다. 이번 주 내내 좋지 않았던 공기 때문에 목은 이미 좋지 않았다. 지난 주에 목상태가 좋지 않아 미룬 녹음이었다. 오늘은 어떻게든 끝내야 했다. 혹시 몰라 스트렙실도 준비했다. 스트렙실을 먹는 건 처음이었다. 옥시 제품은 사용하면 안 된다던대.

이번 녹음은 꽤 어려웠다. 톤을 잡는 게 힘들었고, 가까스로 잡은 톤을 이어 가는 게 힘들었다. 실시간으로 목상태가 변했다. 그러다 보니 같은 부분을 수회, 수십회씩 불렀다. 녹음이 끝나고 단편선씨는 어떻게 그렇게 많이 부를 수 있냐고 역정을 냈다.

녹음 상태도 좋지 않았다. 중간중간 소음이 들어왔다. 처음엔 안에서 무언가를 조작하느라 소리가 변한 것이라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옆 건물에서 공사 현장에서 나는 드릴 소리였다. 소리는 점점 커져, 나중에는 컨트롤룸에서도 들렸다. 조금 허탈했다.

순두부를 먹으며 오늘 녹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가장 큰 문제는 솔루션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문제가 있으면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가져와야 하는데 아무런 방법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안 되는 부분은 짧게 짧게 펀치를 해서 잇고 싶었다. 단편선씨는 그런 작업방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 라이브는?" 단편선씨는, 라이브와 음반이 최대한 같게끔 하고 싶다고 했다. 나에겐, 라이브는 라이브고, 음반은 음반이었다. 단편선씨는 그새 화가 누그러들었는지, 서로 스타일이 다른 것일 뿐 뭐가 더 낫고 못하지는 않다고 아름답게 정리를 했다. 사실 그렇지는 않다. 그의 방법이 옳고, 좋고 음악적이다. 그렇지만 실력은 없고, 욕심은 있는 나에겐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단편선씨는 오늘 일을 게임에 비유하며, 용성씨는 라이프를 하나 잃었다고 말했다. 나 역시, 게임에 비유하며, 그럼 보너스 라이프를 먹을 수도 있는 것이냐 물었다. 그렇다고 말했다. 안심이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와서 더블링 보컬을 녹음했다. 다행이 드릴질은 멈춰있었다. 350hz정도에서 로우컷을 하면 드릴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잃어버린 로우는 더블링 트랙에서 벌충하기로 했다.

녹음을 마치고 다음 주에 있을 오픈레코드에 대해 이야기했다. '순도 1000% 퓨어 인디 포크' 단편선씨가 내건 카피다. 이것 말고도 많은 것들을 이야기했었다. 내 등에 판넬을 붙이고 거기에 문구를 넣는다거나 하는 것들. 나는 선거 유세 때 쓰는 어깨띠를 찾아 보기로 했다. 아래는 아쉽게도 탈락한 문구들이다.

"감성 인대 대작", "50분 간의 전율", "인스타그램이 극찬한 작품!", "틀어만 놓아도 산소 농도가 올라간다", "1,000분 간의 기립 박수", "1조 번의눈물", "데이빗 보위가 듣다가 죽은 앨범!!!", "류이치 사카모토가 항암 치료 당시 틀어둔 앨범!!!", "잡스의 아이팟에 있던 음악",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그 음악", "유병재가 좋아할 음악!!!", "이명박이 구속 직후 들은 음악!!!", "김정은이 좋아합니다" 같은 것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