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났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아침이었다. 기타와 옷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전날 밤부터 콧물이 줄줄 흘렀다. '맘편한 내과'에 가서 약을 처방 받았다. 의사 선생님이 보는 컴퓨터-챠트에는 "가수"라고 쓰여있었다. 왠지 부끄러웠다. 대기실 한 켠엔 파상풍 주사를 10년마다 맞아야 한다는 광고가 있었다. 지금 바로 맞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콧물이 멈추고 맞는 게 나을 거란다. 조만간 맞아야 겠다.

미리 예약해둔 앤룩 홍대점에서 헤어-메이크업을 했다. 메이크업 선생님이 원하는 스타일을 물었다. 언제나 그렇듯 알아서 해달라고 말했다. "저는 생각이 없습니다." 일종의 헤-메-오마카세다. 메이크업을 마치고 머리를 단장했다. 헤어 선생님은, 머리 자른 시기가 지난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두 분 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라고 물었다. 두 번 다 "남자, 메이크업으로 검색했어요."라고 말했다.

총 비용은 5만원이었다. 3만원은 며칠 전 예약할 때 현금으로 이체를 해뒀다. 카드로 2만원을 추가 결제 했다. 음식물을 먹으면 입술이 지워질 수 있다며 면봉 세개와 약간의 립밤을 챙겨주셨다. 기타를 들고 밖으로 나와 '타다'를 불렀다. 학창시절 나쁜 짓을 많이 했을 것만 같은 인상의 드라이버가 왔다. 시끄럽게 노래연습을 하려했으나, 무서워서 조용히 있었다. 가는 길에 요팟시 섭외 연락을 받았다. "할게요"라고 말했다.

입구에서 차량 막았다. 스튜디오를 간다고 말했더니 통과시켜줬다. 스튜디오 방문 목적 외에는 차량출입이 금지 된다고 한다. 국민대에는 처음 왔다. 잘 정돈 된 느낌이었다. 내가 나온 대학보다 나아 보였다. 7호관 앞에서 내렸다. 지하주차장으로 연결되는 음습한 곳이었다. 지나가는 학생을 붙잡고 스튜디오가 어디인지 몰었다.

전역 후 몇 년 간 학교 근처에서 살았다. 직업생활을 길게 하지도 않았다. 만나서 노는 사람은 대개 대학생이었고, 몇 년 뒤에는 대학원을 다녔다. 이제, 학교와는 멀어졌다. 몸도 마음도. 그렇지만 여전히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학업을 마무리 짓지 못해서일까. 여전히 가장 자주 연락하는 사람들은 대학사람들이기 때문일지도. 대학을 13년째.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천장이 높은 커다란 공실이었다. 200평은 족히 되어보였다. 스태프 분들께 인사를 하고 대기실에 짐을 풀었다. 옷걸이에 옷을 걸고 소파 위에 기타를 뒀다. 세션들은 아직 오는 중이었다. 커피를 사러 밖으로 나갔다. 2층에 올라가 구름다리를 건넜다. 지나가는 혼성-학생무리에 말을 걸었다. 화장실은 어디에 있고 카페는 어디에 있습니까? 서로 말이 갈렸다. 이쪽으로 가는 게 좋다, 이쪽으로 가는 게 좋다. 괜히 분란을 일으킨 걸까? 총명한 눈빛의 학생 하나가 설명하기 어려우니 직접 데려다 주겠다 했다. 팔로우 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렸다. 밖으로 나와 다시 다른 건물로 들어갔다. "여기가 카페예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점심시간이라 그런 것 같아요." 풀메이크업 상태로 돌아다니는 것이 부끄러웠다. 대학에 있기에는 너무 늙은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19학번한테 나는, 나한테 93학번 정도 느낌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살짝 숨이 막힐 수 있다. 길을 안내해 준 학생에게 조리퐁 라떼를 선물하고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커피는 나중에 사야지.

수민 씨가 가장 먼저 왔다. 인집 씨와 지완씨는 비슷하게 왔다. 테이블 위에는 큐시트가 있었다. 큐시트를 들고 나가 촬영순서를 수정했다. 옷 갈아 입는 순서랑, 기타 연주를 고려해서 순서를 짰다. 첫곡은 전역을 앞두고 였다. 연주 안 해도 되고 옷도 안 갈아 입어도 되는 곡이었다. 목이 타서 물을 게속 먹었다. 아침에 먹은 약 때문인 듯 했다. 화장실도 자주 갔다.

악기 설치, 사운드체크, 카메라 리허설, 본 촬영-녹음 순으로 진행됐다. 전역을 앞두고는 3테이크를 촬영-녹음 하고 그 중에 골랐다. 대설주의보도 3테이크 정도 했다. 김일성이 죽던 해가 유난히 오래 걸렸다. 여섯테이크 정도 촬영한 것 같다. 기본 촬영을 마치고 VR용으로 대설주의보를 한 번 더 촬영했다.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를 착용하고 보면, 우리 밴드를 코앞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시선처리가 가장 어려웠다. 허공을 바라보는 윤영배류(류는 어떤 한자를 쓰는 건 지 모르겠다.) 기술을 사용했다. 카메라 감독님이 잘생겨서 자꾸 눈길이 갔다.

촬영은 오후 6시쯤 끝났다. 촬영 전에는 7시~8시쯤 끝날 거라고 안내 받았었다. 인집씨 말로는 지난 번 촬영보다 훨씬 빨리 끝났다고. LED세트를 쓰지 않은 탓에 빨리 끝난 것 같지만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시간이 남았다고 하니 살짝 아쉬웠다. 몇 번 씩 더 했다면 더 좋은 걸 건질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아쉬움은 아쉬움으로 남겨야지. 촬영이 빨리 끝난 덕에 수민씨도 같이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수민 씨는 8시 반까지 신도림에 레슨을 하러 가야한다고 했다.

스태프 분들께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헤어짐 의례를 수행 중인 일군의 학생무리에게 근처에 밥 먹을 만한 곳이 있냐고 물었다. "지하세계"와 학식을 추천 받았다. 둘 다 기분내러 가기에는 애매한 곳인 것 같았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수민 씨 차에, 인집 씨는 지완 씨 차에 탔다. 인집 씨와 지완 씨는 집이 같은 방향이라 했다. 인집 씨가 식당을 찾아서 공유하기로 했다.

아무리 봐도 장사가 잘 안 될 것 같은 위치에 있는 중식당 "콰이러"에 갔다. 탕수육 큰 거 하나를 시키고 각자 식사를 하나씩 주문 했다. 음악으로 돈 버는 얘기, 대안학교에 대한 이야기, 인집시가 엔도서로 있는 수제 심벌 회사 이야기, 투쟁의 근황 같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다시 수민 씨 차에, 인집 씨는 다시 지완 씨 차에 탔다. 인집 씨, 수민 씨와는 새 싱글 녹음 때, 지완 씨, 수민 씨와는 10월 25일에 있을 공연 합주 때 만나기로 했다.

당산역에 내려 9호선을 탔다. 혼자 겨울 옷을 입고 있었다. 대설주의보 촬영을 위해 자라에서 검은색 터틀넥 니트. 겨울 느낌이 좀 났으면 했다. 여름에 나왔지만, 어쨌든 겨울노래니까. 전화기를 열고 이곳 저곳에 근황을 전했다. 촬영을 잘 마쳤다. 아쉽지만 그게 실력이니 어쩔 수 없다. 세션만 믿자. 엄마가 촬영 끝나고 친구들과 밥을 먹으라며 20만원을 보내줬다. 고맙다고 문자를 했다. 보그가 엄마 마음을 바꿔 놓았다.